액션 영화에서 배경이 넓을수록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이 영화가 그 생각을 조용히 뒤집습니다. 《스페셜 시큐리티: 라스트 미션》은 불 꺼진 쇼핑몰 하나를 무대로 두 시간 가까이 긴장감을 끌어갑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만 해도 '별거 있겠어'라는 마음이었는데, 끝나고 나서는 예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숨겨진 과거 — 에디라는 인물이 만들어지는 방식전직 특수부대원(Special Forces veteran)이라는 설정은 액션 영화에서 이미 수없이 쓰인 클리셰입니다. 여기서 특수부대원이란 일반 군인과 달리 고강도 전투, 정보 작전, 근접전투(CQB, Close Quarters Battle) 등 극한 상황에 특화된 훈련을 받은 군인을 말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주인공은 대개 처..
액션 영화에서 스타일이 스토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완벽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 그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 스타일과 이야기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었습니다. 스타일이 먼저 말을 거는 영화의 배경《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틀자마자 제가 먼저 반응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 강렬한 네온 조명, 1950년대풍 볼링장, 책장 뒤에 감춰진 무기고까지 모든 공간이 현실의 범죄물이라기보다 스타일리시한 그래픽 노블, 즉 그림체가 뚜렷한 만화 원작 실사화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
범인을 잡았는데 왜 마음이 더 무거워질까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을 다 보고 나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이 그랬습니다. 아동 실종 사건을 중심으로 두 소녀의 서로 다른 진술이 충돌하는 구조인데, 미스터리가 풀릴수록 오히려 찝찝함이 쌓였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단순한 범인 색출이 아니라는 걸 후반부에야 실감했습니다. 심리 스릴러인데 액션이 없다, 그게 오히려 무서웠습니다《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 꽤 달랐습니다. 속도감 있는 추격이나 자극적인 장면 대신,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충돌 자체가 긴장감이 됩니다. 영화는 7년 전 11살이었던 로니와 앨리스가 아기 올리비아를 유기해 숨지게 한 혐의로 소년원에 수감되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아들이 사라진 뒤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엑스테리토리얼》은 미국 영사관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전직 특수부대원 엄마가 실종된 아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적 장치를 스릴러 액션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설정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가스라이팅이 스릴러가 되는 순간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액션이 아니었습니다. 사라가 "제 아들이 여기 있었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영사관 직원들이 "그런 아이를 본 적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CCTV에서도 흔적이 없고, 심지어 사라의 엄마마저 딸을 의심합니다.여기서 영화가 ..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슬퍼할 틈도 없이 그 사람의 비밀을 혼자 파헤쳐야 한다면 어떨까요. 러시아 스릴러 《모탈 어페어》를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연인의 죽음, 위작 범죄 조직,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도주.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게 남는 영화였습니다. 연인의 죽음 — 슬퍼할 시간도 없이 시작된 도주저는 원래 범죄 스릴러를 고를 때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가'를 먼저 봅니다. 그런데 《모탈 어페어》의 주인공 샤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작가로 살아가며 약혼자 안드레이와 평범하게 미래를 꿈꾸던 여성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됩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영화의 첫 5분이 꽤 잔인합니다. 슬픔을 받아들일 틈 자..
솔직히 저는 《추룡》을 보기 전까지 견자단이 악역을 연기하는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액션 히어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는지, 그가 암흑가의 보스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홍콩 느와르(noir), 즉 부패와 폭력이 뒤섞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장르 영화라는 점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견자단이 연기한 오세오, 악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추룡》의 배경은 1974년 이전의 홍콩입니다. 이 시기는 홍콩 역사에서 '암흑기'로 불리는 시대로, 경찰 조직 내 구조적 부패(structural corruption)가 일상화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