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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스타일, 액션, 모녀서사)

와인마신곰탱이 2026. 9. 14. 22:32

목차


    액션 영화에서 스타일이 스토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완벽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 그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 스타일과 이야기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었습니다.

     

    스타일이 먼저 말을 거는 영화의 배경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틀자마자 제가 먼저 반응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 강렬한 네온 조명, 1950년대풍 볼링장, 책장 뒤에 감춰진 무기고까지 모든 공간이 현실의 범죄물이라기보다 스타일리시한 그래픽 노블, 즉 그림체가 뚜렷한 만화 원작 실사화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즉 조명·소품·색감·배우의 위치까지 포함한 연출 전체를 의미합니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이 미장센 하나만큼은 확실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특히 도서관 장면은 인상 깊었습니다. 책으로 위장된 수납장에서 총과 무기가 꺼내지는 장면은 설정 자체가 이 영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 샘은 어린 시절부터 범죄 조직 '펌(The Firm)'에 속해 킬러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어머니 스칼렛 역시 같은 일을 했고, 샘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떠난 뒤 조직의 간부 네이선의 손에 길러집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 15년의 공백이 쌓인 시점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설정에서 먼저 느낀 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암살자 조직, 배신, 도망자, 아이를 지키는 킬러, 이 요소들은 《레옹》부터 《존 윅》까지 수없이 반복된 공식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익숙함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 색감과 음악과 여성 캐릭터들을 덮어씌워 자기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은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판단을 섣불리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액션의 완성도, 《존 윅》과 비교해 보니

    액션 영화를 평가할 때 저는 주로 두 가지를 봅니다. 첫째는 카메라가 동작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둘째는 그 동작이 캐릭터의 성격을 얼마나 반영하는가입니다. 이 기준으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면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아쉬웠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볼링장 총격 장면과 후반부 식당 전투였습니다. 공간의 구조를 이용해 여러 인물이 동시에 움직이고, 총격과 격투가 빠르게 이어지는 방식은 분명히 볼 만한 수준입니다. 특히 샘이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캐릭터의 침착함과 싸움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에서 캐릭터성이 살아나는 액션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반면 일부 격투 장면에서는 컷 편집이 과도하게 빠른 탓에 동작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점프 컷(jump cut), 즉 동일한 피사체를 짧은 간격으로 끊어 편집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액션의 흐름보다는 에너지와 음악이 장면을 이끄는 구조가 됩니다. 이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습니다.

    《존 윅》과의 비교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암살자들이 서로 규칙을 지키는 세계, 조직의 명령과 개인의 선택이 충돌하는 구조,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격까지 설정의 유사성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의 평론가 컨센서스(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이 작품을 두고 스타일은 충분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가벼운 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존 윅》보다 훨씬 만화적입니다. 현실감보다 과장된 미학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히려 이 영화만의 개성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액션은 사실 싸움 장면 자체가 아니라 배우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미셸 여, 안젤라 바셋, 카를라 구기노가 각각 무기를 관리하는 사서 역할로 등장합니다. 세 사람이 한 화면에 나오는 순간, 배우들의 존재감만으로도 기대가 생깁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참여하는 액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캐릭터 서사는 더욱 짧습니다.

     

    모녀 서사, 이 재료를 충분히 쓰지 못했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에서 제가 가장 기대했던 건 사실 액션보다 샘과 스칼렛의 관계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버려진 딸이 15년 뒤 어머니와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단순한 재회 이상의 무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이 지금은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이건 단순한 액션 영화의 배경이 아닙니다.

    샘이 8살 소녀 에밀리를 지키게 되는 과정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혼자 남겨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샘이 에밀리를 보호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단순한 의협심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순간에 가깝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그 연결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감정을 오래 붙잡지 않고 빠르게 액션으로 돌아갑니다.

    모성(母性, maternal instinct)이라는 개념을 영화적으로 다룰 때, 이 단어가 단순히 '아이를 지키는 본능'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관계가 서사 안에서 시간을 들여 쌓여야 합니다. 여기서 모성이란 생물학적 연결을 넘어서 보호와 희생, 그리고 관계의 단절과 회복을 포함하는 복잡한 감정입니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이 감정을 건드리긴 하지만 깊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 비평 전문 매체인 로저이버트닷컴(출처: RogerEbert.com)에서도 이 작품이 여성 연대와 모성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배치했지만 그것을 충분히 깊게 전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특히 샘과 스칼렛이 15년 만에 만나는 장면에서 그 공백을 채우는 대화나 감정적 충돌이 더 있었다면,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싸우는 장면의 무게가 훨씬 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재료 자체가 좋기 때문입니다. 세대가 다른 여성 킬러들이 한 팀이 되는 구조, 암살자 조직과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의 이야기, 그리고 깨진 가족 관계를 다시 이어가려는 시도까지 이것들을 조금만 더 단단하게 엮었다면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 됐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보다 아쉬웠습니다.

     

    결론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최종 판단은 이렇습니다.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입니다. 스타일리시한 미장센, 화려한 색감의 액션, 여성 킬러들의 연대라는 소재 모두 다른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오기에는 아까운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그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줄 이야기가 조금 얕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진지한 범죄 스릴러로 접근하면 단점이 크게 보이고, '만화 같은 분위기의 여성 액션 영화'로 접근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입니다. 샘과 스칼렛의 관계, 사서 킬러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면 바로 넷플릭스에서 확인해 보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