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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슬퍼할 틈도 없이 그 사람의 비밀을 혼자 파헤쳐야 한다면 어떨까요. 러시아 스릴러 《모탈 어페어》를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연인의 죽음, 위작 범죄 조직,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도주.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게 남는 영화였습니다.

연인의 죽음 — 슬퍼할 시간도 없이 시작된 도주
저는 원래 범죄 스릴러를 고를 때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가'를 먼저 봅니다. 그런데 《모탈 어페어》의 주인공 샤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작가로 살아가며 약혼자 안드레이와 평범하게 미래를 꿈꾸던 여성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됩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영화의 첫 5분이 꽤 잔인합니다. 슬픔을 받아들일 틈 자체가 없습니다. 시신을 발견한 직후 수사관이 들이닥치고, 샤샤는 그 수사관이 사건 현장 입구에서 마주쳤던 수상한 남자라는 걸 알아챕니다. 경찰을 믿을 수도 없고, 울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 답답함이 영화 내내 지속됩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샤샤가 안드레이의 집을 다시 찾아가 단서가 될 만한 그림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스릴이 아니라 안쓰러움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뒤늦게 알아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도 박탈(disenfranchised grief)'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애도 박탈이란 상실을 슬퍼할 권리나 시간 자체를 빼앗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샤샤에게 영화는 딱 그 상황을 부여합니다. 슬픔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다음 위험으로 밀려가는 것입니다.
위작 범죄의 전말 —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탈 어페어》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봤던 지점은 범죄의 소재입니다. 단순한 총기 사건이나 마약 밀수가 아니라, 미술품 위조(art forgery)가 중심에 있습니다. 여기서 미술품 위조란 유명 작가의 작품을 흉내 내어 진품처럼 속여 판매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저가의 유럽 화가 작품을 19세기 러시아 거장의 명화로 둔갑시키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샤샤는 안드레이가 남긴 이메일 속 그림을 단서로 삼아 사건을 추적합니다. 그 그림들 안에 숨겨진 QR코드를 통해 여러 작품의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위조품들이 거액에 거래되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그 위조품 중 하나가 크렘린을 통해 러시아 대통령에게 판매되었고, 미국 대통령에게 외교 선물로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규모의 위작 범죄는 영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출처: INTERPOL 문화유산 범죄 통계에 따르면 미술품 위조 및 문화유산 범죄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낳는 조직범죄로 분류됩니다. 영화 속 설정이 과장처럼 보여도, 실제 범죄 구조와 꽤 닮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감정사(art appraiser)라는 인물도 등장시킵니다. 감정사란 미술품의 진위 여부와 가치를 공식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조직은 법적 절차상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이 감정사를 이용했고, 감정사 본인도 나중에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전문가도 속는 세계라면, 평범한 사람은 애초에 진실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겉으로는 알 수 없듯,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샤샤가 사랑했던 안드레이가 바로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게 등장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반전입니다.
생존 스릴러로서의 《모탈 어페어》 — 강하지 않아도 끝까지 간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러시아산 B급 스릴러겠거니 하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모탈 어페어》는 2016년 러시아에서 제작·개봉된 작품으로, 89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안에 추격과 폭로, 배신을 꽉 눌러 담습니다.
이 영화가 생존 스릴러(survival thriller)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의 조건 때문입니다. 생존 스릴러란 특별한 능력 없이 극한 상황에 던져진 인물이 살아남는 과정을 그리는 장르입니다. 샤샤는 형사도, 액션 히어로도 아닙니다. 두렵고 지쳐도 계속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에 가깝고, 그 점이 오히려 몰입감을 만듭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예상 밖이었던 건 반전의 위치였습니다. 보통 스릴러 영화는 마지막에 범인을 드러내며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그런데 《모탈 어페어》는 가장 가까운 조력자, 친구 미샤가 사실 이 모든 사건의 주동자였다는 것을 후반부에 드러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든 감정은 배신감보다는 허탈함이었습니다. 샤샤가 위기마다 믿었던 사람이 실은 적이었다는 설정이, 영화 내내 쌓아온 긴장감을 한꺼번에 다른 방향으로 터뜨립니다.
출처: IMDB - Mortal Affair(2016) 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작품은 러시아 국내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소개되며 쾌속 편집과 추격 시퀀스가 강점으로 꼽힙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아쉬웠습니다. 위작 범죄 조직이라는 소재 자체가 훨씬 더 치밀하게 파고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영화가 추격과 액션 위주로 치달으면서 중반 이후 미스터리의 밀도가 조금 옅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인물들의 동기를 촘촘하게 다뤘더라면 기억에 훨씬 오래 남았을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제 머릿속에 남은 건 범죄의 스케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제까지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아무도 대신 진실을 밝혀주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움직여야 하는 그 감각. 그게 이 영화의 진짜 공포였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모탈 어페어》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혀 있던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가. 범죄의 규모나 추격의 스릴보다 그 질문이 더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완벽하게 치밀한 미스터리를 기대하신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능력 없이, 두려워도 멈추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생존기를 보고 싶다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89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꽤 많은 걸 남기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