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대디오》를 보기 전까지, 저는 택시 안이 영화 한 편의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뉴욕 JFK 공항에서 시작된 클라크와 승객 여성의 대화는 100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큰 사건 없이 두 사람의 말만으로 이 정도 밀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보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클라크라는 인물, 불편함에서 이해로제가 직접 영화를 봤는데, 클라크라는 인물이 처음에는 상당히 거북했습니다. 말이 너무 많고, 승객의 사생활에 거리낌 없이 파고드는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의 연애사를 캐묻고, 자기가 세상을 다 안다는 듯 조언을 던지는 모습은 어떤 시각에서 보면 전형적인 '꼰대'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클라크를..
핵미사일 16기가 미국 도시를 향해 날아오는데, 이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면? 넷플릭스 영화 《인터셉터》는 그 황당해 보이는 전제를 아주 좁은 공간 안에 밀어 넣고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제가 처음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98분이 지나고 나서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는 질문을 하나 가지고 나왔습니다. 제한 공간이 오히려 긴장감을 만든다보통 핵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고, 작전실에서 수십 명이 동시에 뛰어다니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인터셉터》는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알래스카 기지가 함락되고,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소규모 요격 기지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이야기는 거의 그 기지 안에서만 진행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있습니다. 영..
액션 영화를 고를 때 저는 보통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지보다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먼저 봅니다. 완벽한 킬러보다 흔들리는 인간이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에이바》를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암살자 영화인 줄 알고 틀었는데 어느 순간 가족 드라마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사람을 죽이기 전에 이유를 묻는 킬러의 설정영화는 꽤 독특한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에이바는 비밀 조직의 지시를 받아 타깃을 제거하는 1급 암살자인데, 임무 직전에 상대에게 반드시 이유를 묻습니다.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럴 코드(Moral Code)"라는 개념이 떠오릅니다. 모럴 코드란 개인이 스스로 정한 윤리 기준으로, 집단의 명령보다 자신의..
아이가 "엄마 나 어디 있어"라고 전화했을 때 목소리가 떨렸다면, 그 순간의 공포가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공개 3일 만에 67개국 1위를 기록한 《더 러너》는 바로 그 감각을 85분 내내 밀어붙이는 영화입니다. 직접 보고 나서 한동안 "저라면 계속 달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더 러너》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납치극의 구조런던의 아침 조깅 중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는 설정,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또 납치 소재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납치 자체가 아니라 '멈추는 순간 아들이 죽는다'는 조건입니다. 주인공 마이아 마틴은 런던 최고의 변호사입니다. 싱글맘으로 아들 노아를 ..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은 넘쳐나는데 막상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 영화 《리미트리스》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내 능력을 한계 없이 끌어올릴 수 있다면 지금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질문을 이 영화만큼 직접적으로 던지는 작품도 드뭅니다. 단순한 성공 판타지로 시작해서 욕망과 부작용이라는 불편한 진실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성공 판타지, 부러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영화는 무명작가 에디 모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글도 못 쓰고, 여자친구 린다에게 버림받고, 이혼 경험까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에디에게 전 처남 번이 NZT라는 정체불명의 알약을 건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 에디는 망설임 없이 약을 삼킵니다. 약이 퍼지는 순간부터 에디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인지 강화..
로튼토마토 기준 평론가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끝까지 봤습니다. 손에 땀을 쥐면서요. 《온 더 라인》, 라디오 생방송 부스 안에서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인질 협박 스릴러입니다. 수치만 보면 별로일 것 같은데, 초반 40분만큼은 제가 올해 본 심리 스릴러 중 가장 불편하고 몰입됐습니다. 그게 더 아쉬웠습니다. 생방송 공간이 만들어낸 밀실 긴장감《온 더 라인》의 핵심 배경은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입니다. 주인공 엘비스는 오랜 경력을 가진 심야 DJ로, 랜덤 전화 연결을 통해 청취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러던 중 게리라는 남성으로부터 이상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쓴 장치가 흥미롭습니다. 바로 밀실 스릴러(Locked 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