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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은 넘쳐나는데 막상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 영화 《리미트리스》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내 능력을 한계 없이 끌어올릴 수 있다면 지금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질문을 이 영화만큼 직접적으로 던지는 작품도 드뭅니다. 단순한 성공 판타지로 시작해서 욕망과 부작용이라는 불편한 진실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성공 판타지, 부러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영화는 무명작가 에디 모라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글도 못 쓰고, 여자친구 린다에게 버림받고, 이혼 경험까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에디에게 전 처남 번이 NZT라는 정체불명의 알약을 건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 에디는 망설임 없이 약을 삼킵니다.
약이 퍼지는 순간부터 에디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인지 강화(cognitive enhancement), 즉 두뇌의 정보 처리 능력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상태를 영화는 굉장히 속도감 있는 화면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인지 강화란 주의력·기억력·판단력이 동시에 극대화되어 평소에는 연결하지 못했던 정보들이 순식간에 이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에디는 앉은자리에서 책 원고를 전부 완성하고, 다음 날 출판사가 들썩입니다.
솔직히 이 초반부를 보면서 저는 부러움부터 느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만 쌓아두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했던 제 모습이 에디와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건드리는 욕망은 단순한 천재 판타지가 아닙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입니다.
닐 버거 감독은 NZT 복용 장면마다 카메라를 빠르게 이동시키고 색감을 강하게 바꾸는 연출을 사용합니다. 관객이 에디의 시점에서 그 감각을 간접 체험하도록 설계된 방식입니다. 실제로 여러 영화 평론에서도 이 시각적 연출을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으로 꼽았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욕망은 하나를 얻는 순간 더 커집니다
에디가 NZT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질문이 조금씩 바뀝니다.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을까'에서 '이게 과연 좋은 일인가'로 이동합니다. 글을 완성했더니 돈이 보이고, 돈을 벌었더니 금융계의 거물 칼 반 룬과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원하는 것을 하나씩 얻을수록 다음 욕망의 크기도 함께 커집니다.
제가 이 지점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에디가 똑똑해진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를 현명하게 만들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약을 먹기 전과 후의 눈빛과 말투를 꽤 다르게 가져갑니다.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두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칼 반 룬은 NZT 없이 오랜 시간 경험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맞붙는 장면에서 '갑자기 얻은 능력'과 '오랜 시간 쌓은 내공'의 차이가 은근히 드러납니다.
이런 맥락에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쾌락 적응이란 사람이 어떤 긍정적 변화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에디의 욕망 곡선이 정확히 이 패턴을 따릅니다. 능력이 생기는 순간 만족은 잠깐이고, 그다음을 향한 욕심이 바로 시작됩니다.
부작용은 능력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듭니다
영화 중반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NZT의 금단 증상(withdrawal symptom)이 나타나고, 에디는 약을 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금단 증상이란 특정 물질을 중단했을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반응으로, 영화 속에서는 필름이 끊기고 글자가 보이지 않는 형태로 표현됩니다.
약의 부작용은 개인의 건강 문제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채업자 게나디가 약의 존재를 눈치채고 빼앗아 가고, 에디의 전 부인 멀리 사는 번의 거래처 명단에서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입원했음을 확인해 줍니다. 처음에는 인생을 바꿔준 기적처럼 보였던 NZT가 어느 순간부터 에디를 옭아매는 족쇄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 반전을 보는 순간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었습니다.
로저 에버트는 《리미트리스》가 '기억력'과 '지능'의 차이를 충분히 탐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저는 이 지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그 비현실적인 설정 덕분에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고 봅니다. 현실적인 약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장치로 NZT를 활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에디는 꾸준한 복용으로 약 없이도 높은 인지 능력을 유지하게 되고, 상원의원 출마까지 이릅니다. 결말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그보다 오래 남은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연결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잊고 싶은 것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일 수 있습니다.
결론
《리미트리스》를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성공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원하는 것은 무한한 능력일까, 아니면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삶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에디가 NZT로 얻은 것들보다 잃어가는 것들을 보여주는 후반부가 훨씬 더 오래 마음에 걸렸다는 점입니다.
완벽하게 논리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상상 하나만큼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인지 강화, 금단 증상, 쾌락 적응이라는 개념들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동안 그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됩니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와 닐 버거의 시각적 연출 덕분에 105분이 짧게 느껴집니다. 성공 판타지가 보고 싶은 날에도, 욕망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날에도 꺼내볼 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