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 니슨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켰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총격전이 아니라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과거의 삶을 내려놓는 것과 총을 내려놓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블랙라이트》는 그 질문을 액션 스릴러의 형식 안에 조용히 밀어 넣은 영화입니다. FBI 내부 음모, 익숙하지만 트래비스 블록이라는 인물이 다르다리암 니슨이 나오는 액션 영화에서 정부 기관 내부의 음모가 등장하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영화를 보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던 건 소재 자체가 아니라 트래비스 블록이라는 캐릭터였습니다.트래비스는 FBI의 비공식 요원(off-the-books operative)입니다. 여기서 비공식 요원이란 조직 내 공식 명부에 이름을..
토니 자, 이코 우웨이스, 타이거 첸, 스콧 앳킨스, 마이클 제이 화이트. 한 작품에 이 이름들이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처음 캐스팅 정보를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실화인가 싶었습니다. 액션영화 팬이라면 이 라인업만으로도 극장 예매 버튼을 먼저 누르게 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막상 다 보고 나서 든 감정은 기대만큼의 만족이 아니라,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이라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이 캐스팅이 만들어낸 것들《트리플 스렛》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중국 최고 갑부 샤오시안 거를 둘러싼 세력들이 충돌하고,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면서 싸움이 이어집니다. 토니 자가 연기하는 토니자는 민간인 구출 임무에 속아 악당들에게 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이코 우웨이스의 자카는 아내와 동료를 잃은 복수를 위해..
액션 영화를 고를 때 저는 보통 주인공이 얼마나 강한지보다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먼저 봅니다. 완벽한 킬러보다 흔들리는 인간이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에이바》를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암살자 영화인 줄 알고 틀었는데 어느 순간 가족 드라마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사람을 죽이기 전에 이유를 묻는 킬러의 설정영화는 꽤 독특한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에이바는 비밀 조직의 지시를 받아 타깃을 제거하는 1급 암살자인데, 임무 직전에 상대에게 반드시 이유를 묻습니다.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럴 코드(Moral Code)"라는 개념이 떠오릅니다. 모럴 코드란 개인이 스스로 정한 윤리 기준으로, 집단의 명령보다 자신의..
액션 영화에서 스타일이 스토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완벽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 그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 스타일과 이야기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었습니다. 스타일이 먼저 말을 거는 영화의 배경《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틀자마자 제가 먼저 반응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 강렬한 네온 조명, 1950년대풍 볼링장, 책장 뒤에 감춰진 무기고까지 모든 공간이 현실의 범죄물이라기보다 스타일리시한 그래픽 노블, 즉 그림체가 뚜렷한 만화 원작 실사화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스콧 앳킨스 액션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싸움 장면이 아니라 크리스라는 남자가 오래전에 한 약속 한마디였습니다. 납치로 시작하는 영화가 결국 아버지 이야기로 끝난다는 게, 생각보다 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납치범처럼 보였던 남자, 크리스 체이니의 진짜 정체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의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저 사람,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주인공 크리스 체이니는 출소한 전과자입니다. 감옥 문을 나서자마자 콜롬비아로 날아가서 갱단 두목의 딸 엘리사를 데리고 도망칩니다. 겉으로만 보면 명백한 납치 장면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행동을 처음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관객이 크리스..
존 밀러는 결혼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가던 날 체포됩니다. 트렁크에서 발견된 대량의 마약은 그가 심은 게 아니었습니다. 25년형. 저는 이 설정을 보는 순간 영화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억울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원래 원했던 게 너무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터시티》: 1970년대 디트로이트, 왜 하필 이 배경이었을까요《모터시티》의 배경은 1970년대 디트로이트입니다. 단순한 시대적 장치가 아닙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도시 자체가 밀러라는 인물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당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 쇠퇴와 빈부격차, 부패가 공존하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디트로이트는 범죄율 급등과 도심 공동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