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 게스트》는 밀실 안에서 연인이 죽어 있고, 그 공간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밀실 살인이라는 설정, 처음부터 관객을 흔든다밀실 살인(locked-room mystery)은 추리 소설에서 오래된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외부에서 침입하거나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닫힌 공간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를 이끈 존 딕슨 카(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가 이 장르를 극한까지 활용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인비저블 게스트》는 그 밀실이라는..
사랑 때문에 군대에 간 남자가 왜 은행을 털게 됐을까요. 《체리》를 처음 틀었을 때 저도 그 연결 고리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남짓을 따라가고 나니, 이 영화가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한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었습니다. 추락 서사 — 악인이 아닌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체리》는 니코 워커의 자전적 실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았고, 톰 홀랜드가 주인공 체리를 연기하기 위해 13kg을 감량했습니다. 영화 제목 '체리(cherry)'는 전쟁터에 막 투입된 풋내기 신병을 뜻하는 군대 은어입니다. 주인공에게 고유한 이름이 없는 것도 의도적 설계로, 그가 ..
톰 홀랜드, 세바스찬 스탠, 로버트 패틴슨이 한 영화에 모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대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첫 감정은 기대했던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허무함이었습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런 영화입니다. 화려한 캐스팅 뒤에 아주 불편한 질문을 숨겨두고 있는 작품. 믿음이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일반적으로 종교 영화라고 하면 신앙이 사람을 구원하거나 타락시키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과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윌러드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 깊은 상처를 안고 돌아온 사람,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런데 아내 샬롯이 암으로 쓰러지자 그의 절박함은 점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시작 7분 만에 등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으니까요. 《침범》은 귀신도, 살인마도 아닌 '내 아이'로부터 시작되는 공포를 다룬 심리 스릴러입니다. 모성이라는 감정이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꽤 불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습니다. 《침범》엄마가 아이를 무서워한다는 것 —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영화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영은이 집 안에 있는 날카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숨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그 물건들을 숨기는 이유가 외부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설정 자체가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비닐하우스》는 한 번의 사고가 연쇄적인 거짓말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아들과 함께 살 집 하나를 바라는 요양보호사 문정이 그 소박한 꿈을 지키려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처음엔 범죄 스릴러라고 예상하고 봤는데, 다 보고 나서 남은 건 긴장감보다 오래된 답답함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스릴러보다 먼저 느껴지는 현실감제가 《비닐하우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생각보다 숨 막히는 스릴러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문정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립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범죄영화처럼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재미보다 "이러다 정말 끝이 없겠는데" 하는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문정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치매를 앓는 노인을..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꽤 큰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유덕화, 서기, 장 르노가 한 화면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이유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는 제가 예상했던 치밀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진짜 재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캐스팅이 만들어내는 설득력《협도연맹: 도둑들의 전쟁》은 처음부터 배우들의 존재감이 상당히 큰 영화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전설적인 도둑 장단이 출소한 뒤 희귀한 보석들을 노리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솔직히 설정 자체는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천재적인 도둑이 있고, 각자의 능력을 가진 동료들이 있으며, 그들을 쫓는 형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익숙한 이야기를 계속 보게 만드는 건 결국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