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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홀랜드, 세바스찬 스탠, 로버트 패틴슨이 한 영화에 모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대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첫 감정은 기대했던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허무함이었습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런 영화입니다. 화려한 캐스팅 뒤에 아주 불편한 질문을 숨겨두고 있는 작품.

믿음이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
일반적으로 종교 영화라고 하면 신앙이 사람을 구원하거나 타락시키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과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윌러드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 깊은 상처를 안고 돌아온 사람,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런데 아내 샬롯이 암으로 쓰러지자 그의 절박함은 점점 광기 어린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급기야 강아지 잭을 재물로 바치는 만행에 이르고, 그럼에도 샬롯의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보여주는 건 믿음이 어디까지 사람을 몰고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앙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이 어느 순간 두려움을 감추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윌러드는 신을 믿어서 무너진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큰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믿음마저 점점 집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결국 그가 파국으로 향한 이유는 신앙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믿음이라는 이름 뒤에 숨었기 때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티가딘 목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믿음을 이용합니다. 그는 설교단 위에서 신의 말을 전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며 리노라를 이용하고 버립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패틴슨이 이렇게까지 비열하고 능청스러운 인물을 표현할 줄은 몰랐습니다. 괴물처럼 생긴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어 보이는 얼굴로 가장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 심리학회(APA)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믿음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극단적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은 개인이 믿음을 강박적으로 왜곡할 위험도 함께 존재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딱 그 지점입니다.
복수는 정의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두고 "톰 홀랜드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제 감정은 좀 달랐습니다.
아빈은 어린 시절부터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랍니다. 부모를 잃고, 이복 남매처럼 함께 자란 리노라마저 티가딘에게 이용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빈은 아버지의 유산인 총을 들고 티가딘을 찾아가 응징합니다. 여기까지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그의 편에 서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한 가지였습니다. 아빈이 선택하는 방식은 정말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들의 방식과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빈에게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잘못된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선택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씁쓸하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하는 모든 행동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빈 역시 자신이 혐오했던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폭력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다른 이유로 시작했을지라도, 폭력에 익숙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모습과 조금씩 닮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가장 씁쓸하게 남았습니다.
톰 홀랜드는 큰 감정을 계속 폭발시키기보다, 쌓고 쌓다가 어느 순간 터지는 방식을 택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억제된 연기가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표현하는 아빈은 강해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싸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차이가 통쾌함 대신 씁쓸함으로 남는 이유입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만 바꾼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초반부가 다소 느리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각각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처음 30분은 '이걸 왜 이렇게 길게 보여주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던 이야기가 왜 이렇게 구성됐는지 알게 됩니다.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였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끝에는 아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윌러드의 이야기, 프레스턴의 이야기, 샌디와 칼 부부의 이야기까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모든 일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이 영화가 단순히 아빈 한 사람의 복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악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또 누군가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특히 보안관 보데가 칼 부부의 살인 증거를 발견하고도 선거를 위해 그것을 없애버리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덮어버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악이 꼭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알고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른 척하는 사람 역시 결국 그 일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에는 분명 직접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주변에는 그 사실을 알고도 침묵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덮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악이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심과 침묵, 그리고 외면이 겹치면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복수극은 아니라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됐습니다. 아빈이 마주하는 건 몇 명의 나쁜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일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어 온 세상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원작 소설은 도널드 레이 폴락(Donald Ray Pollock)이 쓴 동명 소설로, 미국 남부 애팔래치아 지역의 빈곤과 폭력, 종교의 어두운 이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Goodreads, The Devil All the Time). 원작의 분위기가 영화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고, 제가 보기에도 그 무게감은 확실히 전달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특정 장면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신을 믿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사람. 겉으로는 모두 다르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휩쓸리면서 서로 닮아갔습니다. 그게 가장 무서웠습니다.
결론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등장인물들이 했던 선택들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어두운 분위기의 스릴러를 보면 결국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시원함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쉽게 만족시켜주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처단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악을 없앤다고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영화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제목 역시 단순히 영화 속 악한 사람들을 뜻하는 것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편하게 즐기기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보는 동안에도 마음이 무겁고, 끝난 뒤에도 찝찝한 감정이 남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반전이나 시원한 결말을 기대하기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믿음과 욕망에 휘둘릴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마음으로 보는 편이 더 잘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마음 한쪽이 계속 불편했다면, 어쩌면 그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남기고 싶었던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