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존 카터》를 처음 틀었을 때만 해도 그냥 망한 블록버스터 하나 때우는 기분이었는데, 다 보고 나니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자꾸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1912년에 쓰인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SF 설정의 뿌리 같은 작품이 이렇게 늦게 도착했다는 게 묘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고전 SF의 원형, 바르숨이라는 세계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였습니다. 공주를 둘러싼 두 세력의 전쟁, 다른 행성으로 넘어간 지구인 영웅, 원주민 부족과의 동맹.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건 《스타워즈》보다도, 《아바타》보다도 훨씬 앞선 시대입니다.원작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Edga..
기억을 잃으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뭘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컨셔스》는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을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와 한 집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심리스릴러입니다. 케이트 보스워스의 냉정한 연기와 밀폐된 공간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기억상실이 공포가 되는 순간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눈을 떴는데 낯선 여자가 당신 아내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컨셔스》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귀신도, 괴물도 아닌 '내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협이 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83번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차 앞유리에 머리를 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강릉》을 보기 전에는 그냥 조폭 액션 영화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주먹이 아니라 '낭만'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유오성과 장혁이 만들어낸 두 남자의 충돌은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한국형 누아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지는 영화입니다. 유오성 vs 장혁, 두 캐릭터의 구조적 대립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집중하게 된 건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길석과 민석이 같은 화면에 앉아 말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오히려 더 긴장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인물이라는 게, 대사보다 눈빛과 태도에서 먼저 읽혔습니다. 유오성이 연기한 길석은..
한때 충청도 일대를 평정했던 싸움꾼이 바이크 정비사로 살아가다가 다시 주먹을 쥐게 된다는 설정. 《맞짱의 신: 시라소니》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기대했던 건 주먹질 그 자체보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이 결국 돌아가고 마는 순간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예상보다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 안에서 꽤 오래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싸움을 그만뒀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 태오라는 인물주인공 조태오는 고교 시절 충청도 일대를 주먹으로 제패했던 인물입니다. 지금은 바이크 매장에서 정비사로 일하면서, 싸움과는 거리를 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장 현숙을 짝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오히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주인공이라면 싸움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평범한 킬러 액션물로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라 안나라는 인물 하나였습니다. 매기 큐, 사무엘 L. 잭슨, 마이클 키튼이라는 조합은 분명히 매력적인데, 영화가 그 재료를 끝까지 소화했는지는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킬링 카인드가 선택한 캐릭터 설계 방식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설정 자체는 꽤 잘 쌓았구나"였습니다.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가족을 잃고 전설적인 암살자 무디에게 거두어진 안나, 수십 년이 흘러 세계 최고 수준의 청부살인업자가 된 그녀가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안나와 무디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걸 영화계 용어로 서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라드 버틀러가 나온다길래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총격전이 이어지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칸다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CIA 비밀요원의 신분이 전 세계에 노출되고, 아프가니스탄 한복판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 화려한 액션보다 '이 사람이 정말 살아 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CIA 요원의 신분 노출, 왜 이렇게까지 치명적인가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처음부터 이미 불리한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CIA 요원 톰 해리스는 이란 케이블 기술자로 위장해 지하 핵시설에 침투합니다. 여기서 '로우 비저빌리티(Low Visibility) 요원'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