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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존 카터》를 처음 틀었을 때만 해도 그냥 망한 블록버스터 하나 때우는 기분이었는데, 다 보고 나니 머릿속에서 이상하게 자꾸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1912년에 쓰인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SF 설정의 뿌리 같은 작품이 이렇게 늦게 도착했다는 게 묘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고전 SF의 원형, 바르숨이라는 세계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였습니다. 공주를 둘러싼 두 세력의 전쟁, 다른 행성으로 넘어간 지구인 영웅, 원주민 부족과의 동맹.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건 《스타워즈》보다도, 《아바타》보다도 훨씬 앞선 시대입니다.
원작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가 1912년에 발표한 소설 《화성의 프린세스(A Princess of Mars)》입니다. 여기서 행성 간 이동 서사란 단순히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로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다른 행성의 중력과 환경 속에 내던져지면서 정체성과 능력이 완전히 재정의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지구에서는 그냥 퇴역 군인이었던 존 카터가 바르숨에서는 낮은 중력 덕분에 엄청난 점프력과 괴력을 갖게 되는 방식입니다.
바르숨(Barsoom)이라는 세계 자체도 제 경험상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헬륨 왕국, 조단가 세력, 네 개의 팔을 가진 타르크족(Tharks), 그리고 배후에서 움직이는 토르드와르(Therns)의 존재까지. 용어만 따라가는 것도 초반 20분은 꽤 벅찹니다. 실제로 당시 영화 평론에서도 세계관 과부하(worldbuilding overload)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세계관 과부하란 관객이 소화할 수 있는 정보량보다 설정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 감정 몰입이 방해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붙잡은 건 타르크족의 존재였습니다. 네 개의 팔, 녹색 피부, 거대한 몸집. 지금 기준으로 봐도 꽤 인상적인 크리처 디자인입니다.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 역시 타르크족의 조형과 거대한 이동 도시 같은 시각적 설계를 이 영화의 가장 강한 인상으로 꼽은 바 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외계 생물 올라(Woola)와 교감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세계관이 아무리 복잡해도 이런 디테일 하나가 영화를 붙들어 줍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히려 《스타워즈》나 《아바타》의 설정들이 어디서 온 건지 거꾸로 추적하게 됐습니다. 이 작품이 그 모든 것의 원형에 가깝다는 사실이, 단순한 블록버스터 실패작으로 넘기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도망치던 사람이 다시 칼을 드는 이유 — 존 카터의 영웅 서사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존 카터라는 인물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남북전쟁을 겪은 뒤 군 복귀 요청도 거절하고, 화성에 도착해서도 계속 빠져나가려고만 합니다.
영웅 거부 서사(reluctant hero narrativ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주인공이 처음에는 사명을 거부하다가 외부의 사건이나 관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행동에 나서게 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움직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존 카터》는 이 구조를 꽤 충실하게 따릅니다.
존 카터가 바르숨의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는 헬륨의 공주 데자 소리스(Dejah Thoris)와의 만남입니다. 데자는 단순한 구조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가진 과학자이자 정치적 행위자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이 영화를 완전히 식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지점이었습니다. 단순히 공주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중반부에서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의 감정선은 충분히 쌓이지 않습니다. 존과 데자가 왜 그렇게 강하게 서로에게 끌리는지에 대한 감정적 축적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캐릭터의 감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 당시 영화 비평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된 부분입니다(출처: Metacritic).
그럼에도 후반부에서 존 카터가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숨어서 바르숨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장면은 꽤 울림이 있었습니다. 가족을 잃고 전쟁을 혐오하게 된 사람이, 결국 또 다른 세계의 누군가를 위해 다시 싸우기로 선택한다는 구조.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 경우엔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순수한 모험 영화의 감각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요즘 블록버스터에서 점점 보기 어려워진 그 감각, 다른 세계로 그냥 떠나보는 이야기의 단순한 즐거움입니다. 《존 카터》는 그 감각을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겨뒀습니다.
결론
《존 카터》는 완성도가 고르게 높은 영화는 아닙니다. 세계관 과부하, 얕은 감정선, 후반부의 급한 전개. 아쉬운 부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단순히 실패한 블록버스터로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소비하는 SF·판타지 장르의 수많은 설정들이 사실 한 세기 전 이 이야기에서 출발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영화가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기보다, 오래된 상상력이 거대한 화면으로 다시 살아난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고전 모험 서사의 감각이 그리울 때, 혹은 지금의 SF 장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할 때 한 번쯤 꺼내볼 만한 작품입니다. 제 경험상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지 않고 보면 바르숨이라는 세계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