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평범한 킬러 액션물로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라 안나라는 인물 하나였습니다. 매기 큐, 사무엘 L. 잭슨, 마이클 키튼이라는 조합은 분명히 매력적인데, 영화가 그 재료를 끝까지 소화했는지는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킬링 카인드가 선택한 캐릭터 설계 방식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설정 자체는 꽤 잘 쌓았구나"였습니다.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가족을 잃고 전설적인 암살자 무디에게 거두어진 안나, 수십 년이 흘러 세계 최고 수준의 청부살인업자가 된 그녀가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안나와 무디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걸 영화계 용어로 서로게이트 패밀리(Surrogate Family)라고 부릅니다. 서로게이트 패밀리란 혈연이 아닌 상황이나 인연으로 형성된 대리 가족 관계를 뜻하는데, 이 장치는 캐릭터에게 복수의 동기를 단순한 감정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안나가 무디의 죽음 이후 움직이는 방식을 보면 그냥 복수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이 왜 죽어야 했는가를 추적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이 차이가 꽤 분명하게 느껴졌는데, 문제는 영화가 이 감정의 층위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무디와 안나가 함께 보낸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후반부에서 둘이 재회할 때 관객이 느껴야 할 감정적인 무게가 생각보다 가볍게 처리됩니다. 재료는 분명히 있었는데 그걸 충분히 익히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매기 큐의 액션 연출, 무엇이 다른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하게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매기 큐의 액션입니다. 그런데 좋았던 이유가 단순히 "잘 싸운다"가 아니었습니다.
안나가 싸우는 방식은 클로즈 쿼터 컴뱃(CQC)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CQC란 근접 거리에서 총기와 맨손 격투를 혼합해 최소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투 방식입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요원이나 전문 킬러의 싸움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접근인데, 이 영화에서는 화면을 요란하게 채우는 와이어 액션 대신 타격의 밀도로 장면을 채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출 방식은 주인공의 설득력을 상당히 높여줍니다. "이 사람은 진짜 훈련받은 킬러구나"라는 느낌이 오기 때문입니다.
해외 영화 전문 매체 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매기 큐의 신체적 존재감과 액션 퍼포먼스를 이 영화의 주요 강점으로 언급한 리뷰가 다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평가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특히 베트남에서 조신호보를 만난 뒤 건물 안에서 두캐와 그 일행을 연속으로 처리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장 없이 빠르게 끝나는데, 그 속도 자체가 안나라는 캐릭터의 숙련도를 설명합니다. 말보다 동작으로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이 여기서는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반면 마이클 키튼이 연기하는 렘브란트와 안나 사이의 관계는 액션 연출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공기를 불어넣습니다. 서로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주고받는 이 케미스트리(Chemistry), 즉 두 배우가 함께 만들어내는 장면 안의 긴장과 유머의 균형은 단순한 대립 구도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갑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재미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반전 구조, 영리하지만 덜 소화된 결말
솔직히 이 영화에서 예상 밖이었던 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무디가 살아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최종 보스의 정체가 30년 전 이미 암살당한 줄 알았던 에드워드 헤이스라는 점이었습니다.
무디의 경우,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를 역이용해 죽음을 위장했다는 설정입니다. 이런 장치를 내러티브 미스디렉션(Narrative Misdirection)이라고 부릅니다. 내러티브 미스디렉션이란 관객이 특정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 뒤 그 전제를 뒤집는 이야기 기법입니다. 잘 쓰면 강력한 반전이 되고 허술하게 쓰면 억지스러운 전개가 됩니다.
이 영화의 경우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디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연출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 이후 안나와 무디가 에드워드 헤이스를 벙커로 유인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정리됩니다. 제 경험상 반전은 보여주는 것 못지않게 그 이후를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관건인데, 여기서는 조금 서둘렀다는 인상이 남았습니다.
에드워드 헤이스가 죽음을 위장하고 30년간 뒷세계의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영화 속 장르 관습에서 이런 캐릭터를 아크 빌런(Arc Villain)이라 부르는데, 아크 빌런이란 단순한 단편 악인이 아니라 주인공의 과거 전체와 연결된 근원적 적대자를 뜻합니다. 에드워드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데, 정작 그와 안나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결국 안나가 마지막에 마이클과의 총격전에서 살아남으며 영화가 끝납니다. 안나가 '본투비 킬러(Born-to-be Killer)'였다는 정체성의 재확인으로 마무리되는 구조인데, 영화가 전반에 걸쳐 던진 질문인 "킬러로 만들어진 사람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 결말이 어떤 답을 내리는지가 끝까지 애매하게 처리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결론
《킬링 카인드: 킬러의 수제자》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린 건 안나라는 인물이 결국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영화는 그 질문을 충분히 끝까지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 미완의 지점이 이 영화를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습니다.
액션 연출, 배우 조합, 반전 구조 모두 평균 이상의 재료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각본의 밀도와 캐릭터를 파고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 그냥 괜찮은 영화로 마무리된 느낌입니다. 복잡한 기대 없이 매기 큐의 액션과 사무엘 L. 잭슨, 마이클 키튼의 존재감을 즐기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영화 속 킬러 장르의 문법이나 이와 유사한 작품들의 흐름이 궁금하신 분들은 출처: IMDb에서 관련 작품 목록과 평점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