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젠틀맨》을 보기 전까지 주지훈과 박성웅이 나오는 영화라면 당연히 무게감 있는 범죄 스릴러일 거라 단정했습니다. 근데 막상 틀렸습니다. 2022년 12월 개봉한 김경원 감독의 이 작품은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검사 행세를 하며 로펌 대표 권도훈의 거대한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통쾌하게 흘러갑니다. 무겁게 눌리는 대신 보는 내내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주지훈과 박성웅,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성한 《젠틀맨》의 두 얼굴주지훈이 연기한 지현수는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 흥신소 사장입니다. 검사 사칭이라는 황당한 일을 벌이면서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풀어나갑니다. 반면 권도훈은 정반대입니다. 큰소리를 치거나 과하게 위협하지 않아도 ..
형사가 범인을 잡으면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악마들》은 바로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강력계 형사 최재완과 전과 18범 연쇄살인마 차진혁이 몸을 맞바꾸면서 벌어지는 이 영화, 저는 보는 내내 "과연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내 놓지 못했습니다. 악마들 — 바디체인지 설정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공포몸이 바뀌는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장르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대부분은 코미디를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악마들》을 실제로 보고 나서는 그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바디체인지(Body Change)란, 두 사람의 신체와 외모가 물리적으로 뒤바뀌는 설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A의 얼굴로 B가 돌아다니고, B의 얼굴로 A가 살아가..
"이번 한 번만 빌리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십니까? 영화 《사채소년》은 바로 그 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학교 일진과 사채업자가 등장하는 자극적인 청소년 범죄물로 보였는데, 막상 다 보고 나니 남은 건 씁쓸함이었습니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어떻게 사람을 가장 어두운 곳까지 끌고 가는지,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채소년》: 돈이 끼어드는 순간, 관계는 어떻게 바뀌는가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채업자 최랑이 학교에 직접 난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최랑이 학생들에게 강제로 체결하는 계약은 법정 최고 이자율을 훌쩍 넘는 고리대금(高利貸金) 방식입니다. 고리대금이란 법적으로 허용된 이자 한도 이상의 이율을 적용해 돈을 빌려주는 행위로, 현행 대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말만 믿고 극장 좌석에 앉았는데, 전반 한 시간은 나홍진 감독 특유의 긴장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후반부에서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엔딩 이후로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게 감동 때문인지 황당함 때문인지 한동안 구분이 안 됐습니다. 제작비와 크리처물 사이, 이 영화의 실체《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에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까지 합류한 초대형 캐스팅에,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개봉 전부터 화제였습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것도 솔직히 그 숫자 때문이었습니다. 배경은 1970~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