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형사가 범인을 잡으면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악마들》은 바로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강력계 형사 최재완과 전과 18범 연쇄살인마 차진혁이 몸을 맞바꾸면서 벌어지는 이 영화, 저는 보는 내내 "과연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내 놓지 못했습니다.

악마들 — 바디체인지 설정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공포
몸이 바뀌는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장르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대부분은 코미디를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악마들》을 실제로 보고 나서는 그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여기서 바디체인지(Body Change)란, 두 사람의 신체와 외모가 물리적으로 뒤바뀌는 설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A의 얼굴로 B가 돌아다니고, B의 얼굴로 A가 살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코미디 영화에서는 이것이 웃음의 재료가 되지만, 《악마들》에서는 그 자체가 공포의 출발점입니다.
차진혁은 최재완의 얼굴을 얻는 순간부터 경찰 신분을 이용해 아무렇지 않게 경찰서에 출근합니다. 반대로 차진혁의 몸에 갇힌 최재완은 살인마로 오인받아 수갑이 채워진 채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였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 섬뜩했던 건 차진혁이 최재완의 가족을 볼모로 잡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최재완의 기억과 정보를 모두 넘기지 않으면 아내와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입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적 인물인 차진혁이 최재완의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은 단순한 영화 속 장면 이상의 불쾌감을 줬습니다.
이 영화가 바디체인지 설정을 특별하게 사용하는 방식은 한 가지입니다. 외모를 빼앗기면 사회적 정체성까지 함께 사라진다는 것. 최재완은 자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를 최재완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보다 고립된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통해 꽤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얼굴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것인가.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바디스와프(Body Swap) 장르는 국내에서 대부분 코미디로 소비돼 왔는데, 이 영화가 그 공식을 정면으로 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복수심이 정체성을 어떻게 갉아먹는가
형사가 범인에게 복수하려 한다면, 그 형사는 여전히 선한 사람일까요? 《악마들》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최재완은 동생을 잃습니다. 그 분노가 차진혁을 집요하게 쫓는 동력이 됩니다. 영화 초반, 그는 차진혁을 붙잡고 "법이라는 규칙 없이 싸우자"라고 제안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미 어느 정도 예감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정의를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복수심은 처음에는 분노를 풀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돌려준다고 해서 내가 입은 상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복수에 매달릴수록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의 연구에서도 복수를 실행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이후 심리적 회복이 더 느렸다는 결과가 제시된 바 있습니다.
최재완이 차진혁을 고문했던 장소에서 공범들을 심문하고, 비공식적인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묘한 불편함이 생깁니다. 최재완의 방식이 점점 차진혁이 사용하던 방식과 겹쳐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동기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방법론이 비슷해질수록 경계가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저 사람이 범인을 잡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이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혼란이었습니다.
차진혁이라는 인물이 더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악당의 서사, 즉 불우한 환경이나 특별한 트라우마 같은 서사가 없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거가 없습니다. 불우한 환경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섭습니다. 이런 인물에게는 설득도, 감정적 호소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최재완의 복수 계획이 자꾸 엇나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복수를 끝내는 순간까지 최재완은 과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차진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한 복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복수 자체가 최재완의 삶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얼굴도, 몸도, 직업도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마들》이 어느 방향으로 결말을 냈는지는 직접 보시는 편이 훨씬 낫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제가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얼굴도 몸도 직업도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라는 것.
결론
《악마들》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나는 아직 나인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바디체인지라는 장치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봐보니 그 설정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괴물의 외형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 방식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얼굴과 신분으로 타인을 너무 쉽게 규정합니다. 그 판단이 얼마나 허술한 기준 위에 서 있는지를 이 영화가 꽤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복수심과 정체성이라는 두 주제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는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복수심이 사람을 어디까지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액션이나 반전을 기대하고 보셔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지만, 그보다 조금 더 깊은 층을 들여다보는 쪽으로 보시면 이 영화가 훨씬 묵직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