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군대에 간 남자가 왜 은행을 털게 됐을까요. 《체리》를 처음 틀었을 때 저도 그 연결 고리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남짓을 따라가고 나니, 이 영화가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한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었습니다. 추락 서사 — 악인이 아닌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체리》는 니코 워커의 자전적 실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았고, 톰 홀랜드가 주인공 체리를 연기하기 위해 13kg을 감량했습니다. 영화 제목 '체리(cherry)'는 전쟁터에 막 투입된 풋내기 신병을 뜻하는 군대 은어입니다. 주인공에게 고유한 이름이 없는 것도 의도적 설계로, 그가 ..
톰 홀랜드, 세바스찬 스탠, 로버트 패틴슨이 한 영화에 모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대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첫 감정은 기대했던 통쾌함이 아니라 묘한 허무함이었습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런 영화입니다. 화려한 캐스팅 뒤에 아주 불편한 질문을 숨겨두고 있는 작품. 믿음이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일반적으로 종교 영화라고 하면 신앙이 사람을 구원하거나 타락시키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공식과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윌러드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 깊은 상처를 안고 돌아온 사람,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런데 아내 샬롯이 암으로 쓰러지자 그의 절박함은 점점..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 영화라고 하면 보통 통쾌한 액션과 재치있는 유머, 그리고 청춘의 설렘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높은 빌딩숲 위에 혼자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 남겨진 피터 파커를 보면서, 저는 히어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보다 어떤 청년의 고립 일지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습니다. 4년의 고독이 몸에 새겨진다는 것일반적으로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감정은 대사나 표정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습니다. 피터의 고독은 말이 아니라 몸의 변화로 드러납니다. 처음엔 "거미 유전자 변이"라는 설정이 다소 억지라고 느껴졌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이 선택이 가장 와닿는 표현 방식이었다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