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가 중간에 잠깐 멈추고 "이거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싶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베이 오브 사일런스》가 딱 그랬습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사라진다는 설정만 보고 가볍게 틀었다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결국 끝까지 붙잡혀 버렸습니다. 단순한 실종 스릴러라고 부르기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것들이 좀 더 무겁습니다. 부부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무엇이 남을까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불편함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낯선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게 될 때 찾아오는 그 묘한 불편함이었습니다. 윌은 아내 로잘린드와 함께 이탈리아의 사일런스만에서 청혼을 하고, 그곳에서 결혼을 약속합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쌍둥이를 기다리고 있었습..
기억을 잃으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뭘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컨셔스》는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을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와 한 집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심리스릴러입니다. 케이트 보스워스의 냉정한 연기와 밀폐된 공간이 만들어내는 압박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기억상실이 공포가 되는 순간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눈을 떴는데 낯선 여자가 당신 아내라고 한다면, 처음에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컨셔스》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귀신도, 괴물도 아닌 '내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협이 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83번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차 앞유리에 머리를 부..
로튼토마토 기준 평론가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끝까지 봤습니다. 손에 땀을 쥐면서요. 《온 더 라인》, 라디오 생방송 부스 안에서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인질 협박 스릴러입니다. 수치만 보면 별로일 것 같은데, 초반 40분만큼은 제가 올해 본 심리 스릴러 중 가장 불편하고 몰입됐습니다. 그게 더 아쉬웠습니다. 생방송 공간이 만들어낸 밀실 긴장감《온 더 라인》의 핵심 배경은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입니다. 주인공 엘비스는 오랜 경력을 가진 심야 DJ로, 랜덤 전화 연결을 통해 청취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러던 중 게리라는 남성으로부터 이상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쓴 장치가 흥미롭습니다. 바로 밀실 스릴러(Locked Ro..
범인을 잡았는데 왜 마음이 더 무거워질까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을 다 보고 나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이 그랬습니다. 아동 실종 사건을 중심으로 두 소녀의 서로 다른 진술이 충돌하는 구조인데, 미스터리가 풀릴수록 오히려 찝찝함이 쌓였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단순한 범인 색출이 아니라는 걸 후반부에야 실감했습니다. 심리 스릴러인데 액션이 없다, 그게 오히려 무서웠습니다《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 꽤 달랐습니다. 속도감 있는 추격이나 자극적인 장면 대신,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충돌 자체가 긴장감이 됩니다. 영화는 7년 전 11살이었던 로니와 앨리스가 아기 올리비아를 유기해 숨지게 한 혐의로 소년원에 수감되는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시작 7분 만에 등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으니까요. 《침범》은 귀신도, 살인마도 아닌 '내 아이'로부터 시작되는 공포를 다룬 심리 스릴러입니다. 모성이라는 감정이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꽤 불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였습니다. 《침범》엄마가 아이를 무서워한다는 것 —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영화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영은이 집 안에 있는 날카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숨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그 물건들을 숨기는 이유가 외부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설정 자체가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틀었을 때 저는 그냥 시끄러운 재난영화 한 편 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만약 지금 이게 안 된다면?"이라는 생각이 자꾸 걸렸기 때문입니다. 폭발 한 번 없이 이렇게까지 불안하게 만든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사이버 공격이 진짜 무기가 되는 방식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비행기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끊기고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 딱 그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사이버 공격(Cyber Attack)이 어떤 순서로 일상을 무너뜨리는지를 꽤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사이버 공격이란 디지털 네트워크를 겨냥해 통신, 교통, 금융 같은 핵심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행위를 말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