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다크랜드》를 처음 볼 때 그냥 시원한 복수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이 범인을 하나씩 쓰러뜨리는, 예측 가능한 흐름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떠오른 건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복수를 완성한 사람이 결국 어떤 얼굴로 남는가, 그 물음이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의사가 어둠으로 내려가기까지《다크랜드》의 출발점은 구조적으로 단순합니다. 성공한 심장외과 의사 자이드는 안정적인 직업과 임신한 아내,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삶이 있는 사람입니다. 범죄 세계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죠.그런데 동생 야신이 찾아옵니다. 범죄 조직에 얽혀 은행을 털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야신은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자이드는 거절합니다. 그리고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강릉》을 보기 전에는 그냥 조폭 액션 영화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주먹이 아니라 '낭만'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유오성과 장혁이 만들어낸 두 남자의 충돌은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한국형 누아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지는 영화입니다. 유오성 vs 장혁, 두 캐릭터의 구조적 대립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집중하게 된 건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길석과 민석이 같은 화면에 앉아 말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오히려 더 긴장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인물이라는 게, 대사보다 눈빛과 태도에서 먼저 읽혔습니다. 유오성이 연기한 길석은..
솔직히 저는 《추룡》을 보기 전까지 견자단이 악역을 연기하는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액션 히어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는지, 그가 암흑가의 보스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홍콩 느와르(noir), 즉 부패와 폭력이 뒤섞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장르 영화라는 점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견자단이 연기한 오세오, 악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추룡》의 배경은 1974년 이전의 홍콩입니다. 이 시기는 홍콩 역사에서 '암흑기'로 불리는 시대로, 경찰 조직 내 구조적 부패(structural corruption)가 일상화되어..
솔직히 저는 《젠틀맨》을 보기 전까지 주지훈과 박성웅이 나오는 영화라면 당연히 무게감 있는 범죄 스릴러일 거라 단정했습니다. 근데 막상 틀렸습니다. 2022년 12월 개봉한 김경원 감독의 이 작품은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검사 행세를 하며 로펌 대표 권도훈의 거대한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통쾌하게 흘러갑니다. 무겁게 눌리는 대신 보는 내내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주지훈과 박성웅,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성한 《젠틀맨》의 두 얼굴주지훈이 연기한 지현수는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 흥신소 사장입니다. 검사 사칭이라는 황당한 일을 벌이면서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풀어나갑니다. 반면 권도훈은 정반대입니다. 큰소리를 치거나 과하게 위협하지 않아도 ..
저는 한소희와 전종서의 이름만 믿고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제가 두 시간 동안 따라간 건 화려한 캐스팅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두 여자의 숨소리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프로젝트 Y》는 금괴와 검은돈을 둘러싼 범죄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범죄 장면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던 순간이 더 오래 남습니다. 꽃집 직원과 배달 기사, 그 절박함의 온도영화는 처음부터 두 주인공을 아주 낮은 자리에서 보여줍니다. 미선(한소희)은 낮에는 꽃집 직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유흥업소 에이스로 뛰는 이중생활을 합니다. 도경(전종서)은 오토바이로 불법 배달을 돌리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 저는 단순히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코드라고 생각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