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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소희와 전종서의 이름만 믿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제가 두 시간 동안 따라간 건 화려한 캐스팅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두 여자의 숨소리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프로젝트 Y》는 금괴와 검은돈을 둘러싼 범죄 영화인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범죄 장면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던 순간이 더 오래 남습니다.
꽃집 직원과 배달 기사, 그 절박함의 온도
영화는 처음부터 두 주인공을 아주 낮은 자리에서 보여줍니다. 미선(한소희)은 낮에는 꽃집 직원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유흥업소 에이스로 뛰는 이중생활을 합니다. 도경(전종서)은 오토바이로 불법 배달을 돌리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 저는 단순히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코드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엄청난 부(富)가 아닙니다. 미선은 "이제는 밤에 자고 낮에 일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도경은 돈이 생기면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이 대사들이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거창한 꿈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원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이들에게는 너무 멀다는 것.
사건의 발단은 승부조작(match-fixing)입니다. 여기서 승부조작이란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사전에 금전 거래를 통해 임의로 결정하는 행위로, 국내 스포츠계에서 실제로 반복되어 온 범죄 유형입니다. 영화는 농구 경기를 중심으로 이 구조를 정교하게 배치합니다. 토사장이라는 인물이 농구 감독과 손잡고 베팅 판을 짜고, 그 판에 미선과 도경이 재산을 날리면서 이야기가 급격히 꼬여갑니다. 제가 직접 보니 이 전개가 단순히 '사기당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들이 왜 불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하는 과정으로 기능합니다.
이환 감독의 전작인 《박화영》(2018)과 《어른들은 몰라요》(2020)를 떠올리면 이번 작품의 맥락이 좀 더 선명해집니다. 그는 일관되게 제도 바깥에 놓인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뤄왔습니다. 《프로젝트 Y》는 그 연장선에서 범죄 장르의 형식을 빌려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한국 범죄 장르 영화는 2020년 이후 여성 주인공을 중심에 둔 작품의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Y》는 그 흐름 안에서 단순히 "여자도 센 범죄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왜 이 여자들이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 점이 제게는 예상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두 배우의 호흡, 그리고 이 영화가 진짜 묻는 것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사실 범죄 플롯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미선은 강해 보이는 인물인데 내면은 누구보다 불안하고, 도경은 거칠게 굴면서도 순간순간 무너집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함께 있으면 일이 더 꼬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다른 방향을 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흔한 여성 버디 무비(buddy movie)라면 두 사람이 결국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버디 무비란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인물이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중심 서사로 삼는 장르 문법을 말합니다. 《프로젝트 Y》는 이 문법을 일부러 비틀어, 두 사람이 함께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곳까지 가게 된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한소희와 전종서의 연기 밸런스는 여러 면에서 이 영화의 핵심 자산입니다. 제 경험상 두 배우가 같은 공간에 있을 때 화면의 밀도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한소희는 절제된 표정 안에서 감정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고, 전종서는 반대로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스타일인데, 이 대비가 두 인물이 왜 서로를 놓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사실 처음과 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큰 사건 하나로 완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그냥 조금 더 단단해지거나, 조금 더 지쳐있거나. 미선과 도경이 마지막에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그래서 조용하게 남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 경우엔 중반 이후 긴장감이 앞부분보다 약해진다고 느꼈는데, 미선과 도경을 압박하는 반대편 인물들의 존재감이 기대만큼 두텁지 않은 탓이 컸습니다. 토사장과 황소라는 악역 구도는 설정 자체는 탄탄한데, 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체감시켜 주는 장면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이 있고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클라이맥스의 베팅 역전 시퀀스가 주는 쾌감이 조금 덜 증폭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영화산업 내 여성 서사 연구를 꾸준히 발표해 온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인 행위자로 기능하는 작품 수가 2018년 대비 2024년 기준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프로젝트 Y》는 그 통계 안에서도 단순히 "센 여자"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여자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습니다.
결론
《프로젝트 Y》는 정교하게 짜인 범죄 스릴러라기보다는, 두 사람이 어떻게든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극장을 나온 뒤 금괴나 베팅 장면이 아니라 두 인물이 서로를 쳐다보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한소희와 전종서라는 배우 조합이 만들어내는 온도가 이 영화의 진짜 중심입니다.
중반 이후 서사의 밀도가 초반만 못하고, 악역의 존재감이 더 강했더라면 클라이맥스가 훨씬 폭발적으로 느껴졌을 거라는 아쉬움은 분명 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까지 붙잡는 힘은, 세계를 바꾸거나 성공을 꿈꾸는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하루를 살고 싶었던 두 사람의 절박함입니다. 그 온도가 납득이 되는 분이라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