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군대에 간 남자가 왜 은행을 털게 됐을까요. 《체리》를 처음 틀었을 때 저도 그 연결 고리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남짓을 따라가고 나니, 이 영화가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한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었습니다. 추락 서사 — 악인이 아닌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는가《체리》는 니코 워커의 자전적 실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았고, 톰 홀랜드가 주인공 체리를 연기하기 위해 13kg을 감량했습니다. 영화 제목 '체리(cherry)'는 전쟁터에 막 투입된 풋내기 신병을 뜻하는 군대 은어입니다. 주인공에게 고유한 이름이 없는 것도 의도적 설계로, 그가 ..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무기의 크기가 아니라 한 순간의 판단이라는 말, 믿어지십니까? 영화 《미드웨이》를 보고 나서 저는 그 말이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1942년 6월, 태평양 한가운데서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은 불완전한 정보와 몇 초짜리 결정이 수만 명의 운명을 바꾼 전투였습니다. 2019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그 긴박한 순간들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진주만 기습 이후, 전쟁의 판도는 정보전으로 넘어갔다전쟁에서 먼저 맞은 쪽이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미드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진주만 기습이 오히려 미국을 깨우는 방아쇠가 됐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일본 제국 해군이 1941년 12월 7일 새벽, 하와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