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설명하면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2015년 개봉 영화 《스파이 서바이버》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테러를 막으려 했던 사람이 오히려 테러범으로 몰리는 이야기인데, 화면 속 답답함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누명 :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된 순간영화는 런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케이트 애벗은 입국 비자를 심사하면서 위험인물을 사전에 걸러내는 비자 스크리닝(Visa Screening)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자 스크리닝이란, 단순히 서류를 검토하는 절차가 아니라 테러 위협 인물이나 위조 신원을 가진 인물을 입국 전에 차단하는 보안 심사 과정을 의미합니다. 케이트는 바로 그 첫날, 위조 여권을 소지한..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브루스 윌리스 때문에 틀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더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마이클 루커가 연기한 게이브였습니다. 은퇴를 원하는 킬러라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 안에서 제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꺼내준 영화였습니다. 《라스트 미션: 데이 투 다이》은퇴하려는 킬러, 왜 이 설정은 계속 통할까《라스트 미션: 데이 투 다이》는 시작부터 아주 솔직합니다. 마피아 해결사(히트맨, hitman) — 여기서 히트맨이란 조직의 의뢰를 받아 특정 인물을 제거하는 전문 청부업자를 뜻합니다 — 게이브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과거 삶을 정리하려 합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끝내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처음으로 든 의문은 이..
유럽 인구의 99%가 바이러스로 사망한 세계. 저는 이 설정을 보고 당연히 거대한 문명 붕괴 드라마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라스트 맨 다운》은 처음부터 그 기대를 조용히 무시합니다.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영화의 시선은 오직 한 남자의 오두막 앞마당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전부이면서, 동시에 의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무너진 세계, 그런데 왜 카메라는 숲 속만 비추는 걸까요이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의 내용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쉽게 말해 전쟁, 전염병, 재난 따위로 기존 사회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뒤 살아남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매드 맥스》나 《더 로드》처럼 폐허가 된 세상을 광활하게 담아내는 작품들이 이 장르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라스트 맨 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