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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라이드 (24년 우정, 송크란, 웃음)

와인마신곰탱이 2026. 8. 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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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강하늘과 차은우가 나온다고 해서 그냥 가볍게 웃고 끝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웃긴 장면보다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서만 나오는 어떤 특유의 온도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퍼스트 라이드》는 24년 지기 네 친구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여행지가 어디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4년 우정은 말보다 행동에서 더 잘 보였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배우들의 앙상블(ensemble)이었습니다. 앙상블이란 여러 배우가 개별 주인공이 아닌 집단으로서 서로를 살려주는 방식의 연기 구조를 말합니다. 한 명이 치고 나오면 나머지가 받아주는 식인데, 《퍼스트 라이드》에서 이 앙상블이 꽤 잘 작동했습니다.

     

    태정(강하늘), 도진(김영광), 연민(차은우), 금복(강영석)은 여섯 살 때부터 함께한 친구들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에 태정을 어려서부터 좋아해 온 옥심(한선화)까지 함께하면서 다섯 사람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옥심은 단순히 여행에 함께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태정을 바라봐 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제가 재미있다고 느낀 건 이 관계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처럼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친구이고, 누군가는 짝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섯 사람이 있을 때는 굳이 관계를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대하는 말투나 행동만으로 어떤 시간이 쌓여 있는지 느껴집니다.

     

    특히 옥심의 존재 덕분에 태정이라는 인물도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능청스럽고 웃긴 사람처럼 보이지만, 옥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오랫동안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로맨스 장치라기보다 24년이라는 시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24년째 친구라는 게 처음엔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래된 친구들은 서로의 단점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 편안함이 스크린에서도 느껴졌습니다.

     

    강하늘은 남대준 감독의 전작 《30일》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췄습니다. 남대준 감독은 강하늘이 자신의 코미디를 가장 잘 살려주는 배우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실제로 태정이라는 캐릭터는 계산된 개그맨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송크란 뮤직 페스티벌을 둘러싼 사건의 구조

    《퍼스트 라이드》의 이야기 구조는 사실 꽤 단순합니다. 고3 때 한 번 실패했던 태국 여행을 10년 만에 다시 떠난다는 것이 뼈대입니다. 목적지는 태국의 송크란 뮤직 페스티벌인데,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태국 송크란(Songkran)은 물을 뿌리며 새해를 맞는 태국의 대표적인 축제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축제의 들뜬 분위기가 네 친구의 정신없는 여행과 겹치면서 꽤 재미있는 배경으로 활용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흥미롭다고 느낀 건 코미디의 구조 방식이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고들이 연속으로 쌓이면서 상황이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지는 방식, 즉 스노볼 이펙트(snowball effect) 구조입니다. 여기서 스노볼 이펙트란 처음엔 사소한 실수나 사건이 점점 커지며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는 서사 기법을 뜻합니다.

     

    고3 때 공항버스를 놓쳐 여행이 무산됐던 첫 번째 실패가 10년 뒤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될 것 같은 예감이 영화 내내 흐릅니다. 태국에 도착한 뒤에도 여행사 가이드가 도난 차량을 몰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 지점에서 영화의 긴장감이 코미디와 섞이기 시작합니다.

     

    제 경우엔 이런 구조가 오히려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여행은 드라마를 만들지 않습니다. 뭔가 자꾸 어긋나야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오래된 친구들이라면, 수습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묘하게 웃기게 됩니다.

     

    웃음 뒤에 남는 것: 친구와 함께한 시간의 의미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웃겼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나에게도 저렇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도진이 친구들에게 10년 만에 여행을 제안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막 퇴원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부분은 코미디 영화 안에서 꽤 조용하고 무거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관계가 진짜 오래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 여행 한번 잡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번 주말에 갈까?"하고 쉽게 약속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일과 가족,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날짜 하나 맞추는 것부터 일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네 친구가 10년 전 못 지킨 약속을 다시 꺼내는 모습이 저는 꽤 현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결국 여행에서 중요한 건 여행지가 얼마나 좋았느냐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여행이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장소가 아니라 그때 같이 웃고 싸우던 사람들입니다. 《퍼스트 라이드》는 그 당연한 사실을 코미디라는 형식으로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결론

    《퍼스트 라이드》는 복잡한 서사나 묵직한 메시지를 기대하고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 걸 기대하면 분명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서 얻은 건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이었습니다. 24년을 함께한 친구들이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는 설정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강하늘의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와 차은우의 이미지 역행 캐릭터, 그리고 다섯 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완벽하게 웃긴 영화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보고 나서 기분이 가볍고 따뜻한 영화라는 건 확실합니다. 오래된 친구들이 생각난다면, 혹은 그런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갈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