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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넷플릭스 켜놓고 아무거나 틀었는데 두 시간이 지나 있던 경험, 저는 꽤 자주 있습니다. 《원 레인저》가 딱 그랬습니다. 텍사스 레인저 한 명이 MI6 요원과 손잡고 런던을 뒤흔들 테러 조직을 추적한다는 설정, 복잡하게 읽힐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굉장히 직선적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적어둔 메모가 "생각보다 편하게 봤다"였는데, 그 한 줄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원 레인저》: 장르 공식에 충실한 설정, 그게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원 레인저》의 뼈대는 전형적인 원맨 액션(One-Man Action) 구조입니다. 여기서 원맨 액션이란, 거대한 팀이나 복잡한 공조 없이 단 한 명의 주인공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에 서는 서사 방식을 말합니다. 1980~90년대 할리우드 B급 액션 스릴러가 즐겨 쓰던 문법이고, 《원 레인저》는 그 공식을 2020년대 시점에서 비교적 정직하게 재현합니다.
화 초반부, 텍사스 레인저로 근무하던 주인공 타일러가 국경을 넘으려는 강도단을 저격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감독이 관객에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데 대사 한 줄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읽었습니다. 이후 MI6가 찾아와 테러리스트 맥브라이드의 이송 임무를 제안하는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정 설명에 시간을 최소화하고 빠르게 사건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토마스 제인의 존재감, 캐스팅이 영화를 구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토마스 제인의 연기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액션 스릴러에서 자주 보이는 주인공 유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젊고 빠른 신체 능력을 앞세우는 타입, 다른 하나는 냉철한 두뇌로 상황을 통제하는 타입. 토마스 제인은 이 둘 중 어디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의 액션은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기보다는 몸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과장된 동작보다는 맞고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이 많아서, 오히려 실제로 오래 현장에서 일해온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맥브라이드의 오른팔과 벌이는 최후 육탄전 장면이 특히 그랬습니다.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가 직접 봤을 때 "이기는 게 당연한 주인공"이 아니라 "겨우 버텨서 이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차이가 장르영화에서 꽤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도미닉 쿠퍼와 존 말코비치는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특히 존 말코비치는 이름값이 상당한 배우인데, 영화 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의 비중과 깊이가 그 이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조연 활용도 측면에서는 제작비 규모의 한계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중예산 장르 영화에서 유명 배우를 이름만 빌려 쓰는 경우가 꽤 있는데, 《원 레인저》도 그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방사능 테러 플롯, 긴장감은 있지만 스케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원 레인저》가 단순한 범죄자 추적에서 조금씩 규모를 키우는 건 중반부부터입니다. 테러 용의자가 폭사하고, 카시미르 일당이 방사능 물질을 이용한 더티밤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더티밤은 일반적인 폭발물에 방사성 물질을 결합해 폭발 이후 주변을 오염시키는 방식인데, 영화에서는 이 설정을 이용해 후반부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처음에는 그저 범인을 쫓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범인을 잡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테러 자체를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도 이때부터는 주인공이 다음 단서를 찾는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타일러가 실패하면 피해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라 런던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방사능 테러라는 소재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니, 영화가 보여주는 위협의 규모가 생각만큼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런던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화면에서 느껴지는 규모는 그보다 작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설정한 위험과 화면으로 보여주는 위험 사이에 조금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크게 지루하지 않았던 건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갱스터가 등장하는 은신처 급습이나 맥브라이드의 전 애인에게서 단서를 얻는 과정처럼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각각의 사건이 다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특별히 놀라운 반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불필요하게 이야기를 늘어뜨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결국 《원 레인저》의 테러 이야기는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주인공이 한 단계씩 사건에 깊숙이 들어가도록 만드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보고 '대단하다'기보다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는 알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처음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 봤습니다. "생각보다 편하게 봤다." 처음에는 너무 단순한 감상이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이 영화에는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물이 너무 많거나 설정이 복잡해서 잠깐만 집중을 놓쳐도 다시 되돌려 봐야 하는 작품도 많습니다. 물론 그런 작품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퇴근하고 지친 날에는 오히려 《원 레인저》처럼 단순한 영화가 더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원 레인저》는 엄청난 반전을 남기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끝까지 보고 나면 "그래, 이정도면 됐다."는 묘한 만족감을 줍니다. 어쩌면 제가 두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보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지루하지도 않은 영화.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틀었다가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의 매력은 생각보다 꽤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