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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놀란 감독이 3,000년 된 서사시를 왜 지금 만드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스케일 큰 블록버스터겠거니 했는데, 영등포 아이맥스에서 나오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오디세이》는 괴물과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귀환 —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
제가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원전(原典), 즉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서사시를 현대 관객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의 문제요. 여기서 원전이란 기원전 8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디세이아》 원본 텍스트를 의미합니다. 2,700년 전 이야기를 지금의 영화 문법으로 번역하는 것은 전혀 다른 도전입니다.
놀란 감독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트로이 목마 장면부터 그 의지가 느껴졌는데, 실제로 제작된 목마는 무게만 3.6톤에 높이 10미터입니다. CG가 아닙니다. 맷 데이먼을 포함한 배우 전원이 그 안에 실제로 들어가 연기했고, 병사 역할의 스턴트 배우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며칠을 버텼습니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긴박함이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면, 장면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세이렌의 바위에서였습니다. 세이렌(Siren)이란 원전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끄는 바다 생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세이렌은 유혹이 아니라 상실과 갈망을 보여줍니다. 오디세우스가 진짜로 원했던 건 이타카라는 장소가 아니라, 떠나기 전의 이타카였다는 것을 세이렌이 말해줍니다. 저는 그 순간,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죄책감 —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오디세우스
제 경험상 놀란 영화의 주인공은 항상 죄책감을 안고 있습니다. 《인셉션》의 코브, 《인터스텔라》의 쿠퍼, 《오펜하이머》의 오펜하이머까지.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죄책감의 무게가 조금 달랐습니다.
타임스가 표현한 것처럼, 오디세우스는 천 년대의 원자폭탄의 아버지처럼 도시 하나가 아닌 문명 전체를 파괴한 죄책감에 짓눌려 있는 인물입니다. 트로이 목마를 직접 설계한 자, 제우스의 법을 깨뜨린 자. 영화 후반부에서 오디세우스는 스스로 말합니다. "우리는 교육과 언어의 세계 속에 살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스스로 부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보였다." 제가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이건 신화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맷 데이먼의 연기는 이 무게를 정확히 짊어집니다. 그는 강하지만 두려워하고, 영리하지만 오만하며, 수십 년의 여정 끝에 집에 돌아왔을 때도 페넬로페를 바로 만질 수 없었습니다. 이 재회 장면은 《인터스텔라》의 책장 장면처럼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닿지 못하는 구조인데,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직접 관람하면서 이 장면에서 예상보다 훨씬 더 감정이 올라왔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칼립소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전에서 칼립소(Calypso)란 오디세우스를 7년 동안 섬에 붙잡아 두는 바다의 님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칼립소는 여신이라기보다 누군가와의 연결이 끊긴 채 하루를 반복해 온 지친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테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녀는 이 역할을 감금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깊은 감정적 필요로 접근했습니다. 그 덕분에 오디세우스와 칼립소의 관계는 단순한 억류 구도를 넘어섰습니다.
- 오디세우스: 문명을 파괴한 설계자로서의 죄책감을 안고 귀환을 시도하는 인물
- 칼립소: 신이 아닌 감정적 생존자로 재해석된 캐릭터
- 아테나: 영화 엔딩에서야 정체가 밝혀지는, 오직 오디세우스의 시점에서만 보이는 존재
- 텔레마코스: 아버지를 모른 채 성장한 아들이자, 오디세우스에게 귀환의 이유를 확인시키는 인물
IMAX — 이 영화가 스크린 앞에서 가장 강한 이유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관람했는데, 두 번 모두 아이맥스였습니다. 첫 번째는 개봉 전날, 두 번째는 영등포 아이맥스에서 정식 개봉 이후였습니다. 솔직히 일반관에서 보더라도 압도감은 있겠지만, 이 영화만큼은 포맷 선택이 체험의 질을 갈라놓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는 전 장면을 70mm IMAX 필름(Film)으로 촬영했습니다. 여기서 70mm 필름이란 일반 35mm 필름보다 두 배 넓은 필름에 이미지를 담는 방식으로, 디지털 촬영과 달리 빛이 실제 필름 입자에 물리적으로 기록됩니다. 아이슬란드부터 그리스까지 6개국 오지에서 91일간 촬영하며 뽑아낸 필름만 640km에 달합니다. 제가 저승의 길목 장면에서 아이슬란드의 황무지와 기묘한 빛을 봤을 때, 이게 세트가 아니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키클롭스(Cyclops) 장면도 같은 이유로 기억에 남습니다. 키클롭스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인족으로, 원전에서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을 잡아먹는 폴리페모스가 대표적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 동굴 안에 18미터짜리 로봇 거인을 세우고 조명 대신 자연광으로 촬영했습니다. 배우들이 허공을 향해 연기한 것이 아니라, 눈앞에 실제로 서 있는 물체를 올려다보며 반응한 것입니다. 그 비명 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루드비그 고란손의 사운드트랙은 거대한 장면에서 소리로 공간을 채웁니다. 영화음악 분야에서 고란손은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작곡가로, 이번 작품에서도 신화적 세계의 무게를 소리로 구현합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영상과 음향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감각으로 작동하는 드문 경우였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2시간 53분의 러닝타임 안에 원전의 방대한 에피소드를 담다 보니 일부 인물은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총 24권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시로, 그 분량을 3시간 안에 다 담는 것은 어떤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놀란은 이 방대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합니다.
《오디세이》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인간이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그 긴 시간을 버티는가였습니다. 오디세우스가 7년 동안 칼립소의 섬에 갇혀 있으면서도 페넬로페의 핀을 놓지 않은 것처럼, 사람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자신이 왜 버티는지를 잊지 않는 무언가를 붙들고 삽니다. 저는 그 감정이 신화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언어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 영화가 특별했습니다.
놀란이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가장 거대한 화면으로 되살렸지만, 결국 관객의 마음에 남는 것은 한 남자의 가장 인간적인 그리움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극장에서, 가능하다면 아이맥스로 직접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