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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댓글부대 (인터넷, 팀알렙, 임상진)

와인마신곰탱이 2026. 8. 31. 11:42

목차


    영화관을 나오면서 제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뭔지 아십니까. 휴대폰을 집어 들다가 그냥 내려놨습니다. 방금 본 것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댓글부대》는 댓글을 조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이 평소에 인터넷을 어떻게 소비해왔는지를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보고 나서 찝찝한 영화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댓글부대》인터넷에서 내가 화낸 것들, 혹시 누군가 만들어낸 것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저도 댓글 몇 개를 읽고 사람을 판단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기사보다 댓글을 먼저 열어보는 습관이 있었고, 비슷한 반응이 수백 개 달려 있으면 자연스럽게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로 받아들였습니다. 《댓글부대》는 바로 그 무심한 순간을 건드립니다.

     

    영화는 기자 임상진이 대기업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가 오보라는 낙인이 찍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그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팀알렙'이라는 여론조작 조직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여론조작이란 특정 의도를 가진 주체가 다수의 가짜 계정이나 조직적 활동을 통해 온라인 공론장의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많이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인터넷 환경 자체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팀알렙의 시작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SNS 명품 인증샷에 어울리는 허세 문구를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담배 마케팅에도 발을 담그면서 '돈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쟁 영화를 무너뜨리기 위한 임금 체불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져서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어느 선을 넘는 건지조차 모르고 넘어버릴 수 있다는 감각이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웠던 건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퍼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팀알렙이 직접 올린 글이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그걸 믿고 공유하기 시작하면 제작자는 손을 떼도 됩니다. 알고리즘과 사람들의 확증 편향, 즉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방향의 정보를 더 쉽게 수용하는 심리적 경향이 대신 굴려주기 때문입니다.

     

    팀알렙,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김성철, 김동휘, 홍경이 연기한 팀알렙 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당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인터넷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멈칫했던 순간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펩택, 찻탓캇, 찡킹이라는 독특한 닉네임을 만들고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무대로 여론조작을 업으로 삼는 구조입니다. 소셜 엔지니어링(Social Engineering)이라는 개념이 여기에 딱 들어맞습니다. 소셜 엔지니어링이란 기술적 해킹이 아닌 사람의 심리와 신뢰를 이용해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을 해킹하는 것입니다. 팀알렙이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시스템을 뚫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믿음을 조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사회 활동가 이용찬의 딸 은채를 인플루언서로 키웠다가 마녀사냥으로 급격히 추락시키는 작전이었습니다. 인플루언서를 만들고 부수는 이 과정은 철저히 계획된 내러티브 조작입니다. 내러티브 조작이란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설계해 대중의 인식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법입니다. 은채가 마녀사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뒤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장면에서 저는 처음으로 이 영화가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 이야기임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서 떠오른 연구가 있습니다. Soroush Vosoughi, Deb Roy, Sinan Aral 연구진은 2018년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트위터에서 퍼진 약 12만 6천 건의 뉴스 확산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거짓 뉴스는 진실한 뉴스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특히 거짓 뉴스가 약 1,500명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진실한 뉴스보다 약 6배 짧았습니다. (출처: Science, Vosoughi et al., 2018)

     

    제가 이 연구 결과를 찾아보고 나니 《댓글부대》의 팀알렙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놀라고,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던져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알아서 퍼뜨립니다.

     

    결국 무서운 건 거짓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에서 화가 나는 글이나 충격적인 내용을 보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반응했던 적이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알고 나니 영화 속 팀알렙의 행동이 단순히 극단적인 설정처럼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상진이 확신할수록 저는 더 의심하게 됐다

    손석구가 연기한 임상진은 처음에는 꽤 자신감 있는 기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취재를 이어갈수록 표정이 바뀝니다.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의 게임판 위에 올라와 있다는 느낌이 점점 짙어집니다. 영화를 보다 보 알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일을 파헤칠수록 오히려 진실이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답답함 말입니다.

     

    영화는 임상진이 대기업 만전의 여론전담팀 존재를 쫓는 추적극을 중심에 놓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가 확보하는 증거와 제보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영화가 계속 열어둔다는 점입니다.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라는 개념이 여기에 적용됩니다. 어젠다 세팅이란 미디어나 특정 집단이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를 결정하는 힘, 즉 관심의 방향 자체를 설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임상진이 만전을 쫓고 있는지, 아니면 만전이 임상진을 그 방향으로 유도한 것인지 끝까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때 느낀 건,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도 프레임 안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프레임 밖에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자가 움직일수록 누군가가 원하는 이야기가 더 빠르게 퍼질 수도 있습니다. 이 설정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뉴스 및 시사 정보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5점 만점에 3.27점이었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내가 실제로 이용하는 뉴스 및 시사 정보에 대한 신뢰도 역시 3.2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를 보고 나니 《댓글부대》가 던지는 질문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뉴스를 접하지만, 정작 그 정보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기자의 말도 의심하고, 댓글도 의심하고, 누군가의 제보도 의심해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영화는 그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결론

    《댓글부대》는 댓글을 조작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고 나서 오래 남은 건 결국 저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평소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읽고, 무엇을 믿고, 왜 믿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거짓말은 혼자서는 힘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믿는 순간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무심코 한몫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꽤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시원한 결말을 기대하고 본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매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댓글을 그냥 댓글로 봤다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 댓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당장 확인하고 싶은 뉴스가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천천히 보고 싶었습니다. 《댓글부대》는 저에게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 인터넷을 바라보는 습관을 잠깐 멈춰 세운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