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삶이 다할 때까지 (절박함, 플래시백, 추격전)

와인마신곰탱이 2026. 9. 20. 17:41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틀기 전까지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직 요원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은 워낙 많이 봐온 공식이라서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기억에 남은 건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세계로 억지로 끌려 들어가는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2025년 넷플릭스 프랑스 액션 스릴러 《삶이 다할 때까지》 이야기입니다.

     

    영웅이 아닌 사람의 절박함이 더 오래 남았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프랑크가 생각보다 훨씬 '지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직 헌병 특공대(GIGN) 출신 요원이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부터 뭔가를 압도하거나 통제하는 인물로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헌병 특공대(GIGN)란 프랑스 국가헌병대 소속 대테러 특수부대로, 실제로도 인질 구출·항공기 제압 같은 극한 상황을 전담하는 엘리트 조직입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성당 외벽 공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뭔가 무너진 삶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아내 레아와 조용히 살아가던 프랑크의 집에 복면을 쓴 무리가 침입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돌아갑니다. 침입자들이 단순히 금품을 노린 게 아니라 프랑크가 숨겨둔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건 단순한 강도 사건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실제로 손에 땀을 쥔 건 프랑크의 전투 능력보다 레아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출산이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총구를 들이밀리는 상황은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막혔습니다.

    배우 기욤 카네는 이 부분을 꽤 잘 잡아냈다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전직 특수부대 출신답게 좀 더 시원하게 싸워줬으면 했다"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절제된 연기가 캐릭터를 더 현실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 그게 이 영화 프랑크의 정체성이었습니다.

     

    플래시백 구조가 이야기를 살리기도, 발목을 잡기도 한다

    영화는 현재의 추격전을 멈추고 10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flashback) 구조를 씁니다. 여기서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과거 장면을 삽입해 인물의 동기나 배경을 설명하는 서사 기법으로, 액션 스릴러보다는 드라마 장르에서 자주 쓰입니다. 저는 이 선택이 용감한 시도였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초반 긴장감이 꺾이는 게 아쉽기도 했습니다.

    10년 전 특공대 훈련 시절, 프랑크와 레아가 처음 만나고 연인이 되는 과정, 그리고 선배 대원 니코의 죽음이 어떻게 프랑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이 플래시백은 분명히 필요한 설명입니다. 니코가 장비 없이 단독으로 정보를 캐러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고, 프랑크가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과정은 현재의 모든 사건과 연결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플래시백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과 "현재 긴장감을 너무 오래 끊는다"는 의견 모두 이해가 됩니다. 제 경우엔 니코의 장례식 장면에서 그의 아들 앙투안이 프랑크를 외면하는 장면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짧은 장면 하나가 프랑크의 죄책감을 말보다 훨씬 명확하게 보여줬거든요. 한편으로는 국가가 작전 실패를 은폐하고 강도 사건으로 위장했다는 설정은 충분히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는데, 영화가 그 부분을 비교적 빠르게 지나치는 건 아쉬웠습니다. 이런 인물의 내면과 정치적 음모를 함께 담은 작품으로는 넷플릭스(Netflix)가 공개한 프랑스 스릴러 계열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장르 팬이라면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결국 플래시백 구조는 이 영화의 감정적 깊이를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액션 스릴러의 속도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중반부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양날의 검입니다. 저는 그 균형이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파리 지붕과 베르사유 하늘 위의 추격전, 그 너머의 질문

    후반부 추격전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렬한 장면들을 몰아서 터뜨립니다. 프랑크는 경찰에 쫓기면서도 아내를 구해야 하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파리의 지붕 위를 달리고, 급기야 패러글라이더(paraglider)를 이용해 하늘로 탈출합니다. 여기서 패러글라이더란 엔진 없이 기류를 이용해 활공하는 낙하산형 비행 장비로, 도심에서 이걸 추격 수단으로 활용하는 장면은 프랑스 액션 영화답게 꽤 과감한 연출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건 단순히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크가 하늘에서 병원 옥상으로 곧장 돌진하는 장면은 아내와 아이를 향한 행동이 얼마나 직선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읽혔습니다.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높은 곳을 두려움 없이 오르던 과거의 프랑크와 지금의 프랑크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프랑크의 응징이 시작되려는 순간 옛 동료들과 대장 실뱅이 막아서고, 프랑크가 아내를 위해 순순히 체포되는 장면은 통쾌한 결말을 기대했다면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면 끝까지 보여줬으면 했다"는 의견도 충분히 납득이 가고, "프랑크답게 가족을 먼저 선택한 결말"이라는 시각도 이해가 됩니다. 저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결국 그 선택이 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참고로 실제 GIGN의 훈련과 작전 방식에 관한 내용은 출처: 프랑스 국방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훈련 장면이나 작전 묘사가 실제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비교해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결론

    《삶이 다할 때까지》를 보고 난 뒤 제 머릿속에 남은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도망쳐 나온 과거를 어디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싶은 삶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엄청난 반전이나 압도적인 액션을 기대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전직 특수요원이 다시 총을 드는 이유가 명예도 복수도 아닌 가족이라는 설정을, 과장 없이 끌고 가는 방식은 나름의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기욤 카네의 연기, 파리 지붕 위 추격전, 그리고 프랑크가 마지막에 내린 선택까지. 가볍게 틀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떠올리게 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