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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하반기 애플 TV가 내건 가장 큰 카드는 라이언 레이놀즈와 케네스 브래너의 조합입니다. 솔직히 이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붙는다는 발표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이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그 '말이 안 되는 조합'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냉전 배경이 만들어낸 버디무비의 구조
《메이데이》의 출발점은 꽤 고전적입니다. 냉전(Cold War), 즉 1940년대 후반부터 1991년 소련 붕괴까지 이어진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이념 대립 시기를 배경으로, 미 해군 조종사 트로이 '어새신' 켈리가 적진에 고립되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냉전 시대 군사 영화에서 이 설정은 상당히 익숙한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트로이를 발견하는 인물 때문입니다. 전직 KGB 요원 니콜라이 우스티노프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KGB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omitet Gosudarstvennoy Bezopasnosti)를 가리키며, 정보 수집과 방첩을 총괄하던 소련의 핵심 비밀정보기관입니다. 냉전 시대 서방 세계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조직이기도 합니다.
그 KGB 출신 인물이 미국 대중문화에 빠져 있는 괴짜로 등장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설정이 단순한 개그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중심축이 됩니다. 니콜라이는 단지 우스운 인물이 아니라, 체제와 개인 사이에서 분열된 인간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이 역할을 진지하게 연기하기 때문에 코미디가 더 날카롭게 살아납니다.
버디무비(Buddy Movie)란 서로 다른 성격이나 배경을 가진 두 주인공이 함께 움직이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장르를 뜻합니다. 《메이데이》는 냉전 첩보물의 외형을 빌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버디무비 공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불신하고,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 결국 서로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흐름입니다.
이 구조가 익숙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중반부터는 어느 정도 다음 장면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장면 전환이 빠르고, 두 사람 사이의 긴장과 유머가 교차하면서 리듬이 계속 살아있었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chemistry), 즉 배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상호작용과 호흡을 영화의 핵심 장점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이 영화를 다르게 만든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메이데이》가 라이언 레이놀즈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보고 나니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에 더 가까웠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트로이는 전형적인 아이언니(Irony)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란 상황의 모순을 언어로 비틀어 웃음을 만드는 기법인데, 레이놀즈는 이걸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추락하고, 묶이고, 러시아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집니다. 이건 그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엔 익숙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케네스 브래너가 옆에 서면서 화학반응이 달라집니다. 브래너의 니콜라이는 무뚝뚝하고 절제된 인물인데, 그 안에 미국 문화에 대한 묘한 동경이 숨어 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발언을 할 때, 저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전직 정보요원이라는 배경의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그 유머가 더 강하게 터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의 균형을 맞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너무 코믹하게 가면 캐릭터의 신뢰감이 무너지고, 너무 진지하면 코미디가 죽습니다. 케네스 브래너는 이 균형을 상당히 잘 잡았습니다. 평소 《햄릿》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 연출과 연기로 알려진 브래너가 이렇게 편안하고 유쾌한 결을 보여주는 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진짜 수확이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항공 액션영화를 향한 오마주(Hommage)를 곳곳에 심어놓습니다. 오마주란 원작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담아 의도적으로 유사한 장면이나 분위기를 재현하는 기법입니다. 《탑건》을 비롯한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낙천적인 모험 정신을 현대적 문법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출처: Variety에서도 이 작품을 80년대 버디무비와 항공 액션물에 대한 러브레터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오마주가 가끔은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80년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신호를 너무 반복해서 보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입보다는 레퍼런스 맞추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중반부에서 그런 느낌이 한두 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인물의 관계 변화를 더 깊게 들어갔다면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됐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니콜라이의 과거와 트로이의 가족 이야기가 조금씩 등장하는데, 이 부분이 좀 더 충분히 연결됐다면 단순한 액션 코미디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두 배우가 가진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론
《메이데이》는 저에게 '대단한 영화'가 아니라 '기분 좋게 끝나는 영화'였습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는 익숙하고, 후반부가 조금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니콜라이와 트로이가 조금 더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남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영화가 제대로 한 일이라고 봅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충분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더 보고 싶다는 감각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메이데이》에서 가장 강한 건 냉전도 액션도 아니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들어낸 묘한 우정이었습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 코미디를 찾고 있다면 꽤 괜찮은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