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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듣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오면서 머릿속에 남은 건 피가 아니라 쓸쓸함이었거든요. 뤽 베송 감독의 《드라큘라: 러브 테일》은 흡혈귀 공포영화가 아니라, 사랑 하나를 붙잡고 400년을 버텨온 한 남자의 비극에 훨씬 가깝습니다. 케일럽 랜드리 존스, 조이 블루, 크리스토프 왈츠가 출연하며 2025년 8월 26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비극적 사랑 — 괴물이 되기 전, 그는 먼저 사랑을 잃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 드라큘라를 변호하려는 거구나"였습니다. 보통 고딕 호러(Gothic Horror)—어둠, 성, 초자연적 공포를 배경으로 한 공포 장르—라고 하면 관객을 긴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드라큘라가 왜 괴물이 됐는지를 먼저 보여줍니다.
영화 속 드라큘라의 본명은 블라드 이세입니다. 15세기 루마니아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였던 그는 독실한 신자로서 이교도 전쟁에 참전해 승리를 거뒀습니다. 신을 믿고, 싸우고, 이겼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 아내 엘리사베타를 잃고, 그 죽음을 교회 추기경이 방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신을 버립니다. 정확히는 신에 대한 분노로 저주를 자청합니다. 그 결과가 불멸의 뱀파이어(Vampire)—피를 마셔야 살 수 있는 영생의 저주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용어를 짚고 넘어가면, 영화 속 드라큘라는 단순한 뱀파이어가 아니라 1세대 뱀파이어(Progenitor)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뱀파이어의 시조라는 의미로, 그에게 피를 빨린 사람은 2세대 뱀파이어가 되어 그에게 복종하는 구조입니다.
드라큘라를 무섭게만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그는 악해지고 싶어서 악해진 게 아니라, 사랑을 잃은 절망이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이니까요.
불멸의 저주 — 400년의 기다림, 사랑인가 집착인가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건 사랑이야"와 "저건 집착이야"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거든요.
드라큘라는 엘리사베타가 죽은 뒤 400년 동안 그녀를 찾습니다. 환생(Reincarnation)—죽은 영혼이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을 믿고, 언젠가 같은 영혼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사이 프랑스에서 외모가 같은 여자를 발견하기도 하고, 파리 정신병원에서 구마사제(Exorcist)—악령을 몰아내는 의식인 구마 의식을 집전하는 사제—를 불러야 할 만큼 이상해진 귀족 영애 마리아의 존재를 통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00년이라는 숫자를 두고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보면서 오히려 다른 감정이 컸습니다. 그 사랑이 아름답다기보다는, 그 기다림이 드라큘라 자신을 얼마나 망가뜨렸는지가 더 눈에 들어왔거든요. 외모만 같을 뿐 다른 여자를 만났을 때 보이는 폭주, 목적 없이 피를 마시는 모습들이 그렇습니다.
사랑과 집착의 차이를 심리학에서는 흔히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느냐"로 구분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이 기준으로 보면 드라큘라의 감정은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400년을 지나면서 집착의 형태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도 이 경계를 일부러 흐립니다.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보는 사람이 판단하도록 열어두죠.
저는 그를 보면서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아름다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시간은 사랑의 증명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잃은 순간에 멈춰버린 자신의 삶일 수도 있으니까요.
고딕 로맨스 —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연기와 뤽 베송의 고딕 연출
드라큘라 하면 우아한 귀족, 완벽하게 위협적인 존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캐스팅을 두고 "어울리냐"라고 의아해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난 뒤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 낯섦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맞습니다.
그의 드라큘라는 완성된 괴물이 아닙니다. 어딘가 불안정하고, 감정이 과하게 드러나고, 방심하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 불안정함이 400년을 살아온 존재의 내부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맡은 구마사제 역할은 드라큘라의 존재를 추적하고 신문하는 역할로, 영화에 지적인 긴장감을 더합니다.
뤽 베송 감독의 연출은 제 예상보다 훨씬 과감했습니다. 고딕 로맨스(Gothic Romance)—어두운 배경과 초자연적 요소를 결합한 낭만적 서사 장르—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톤을 바꾸는 장면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흘러가던 장면이 갑자기 낯선 리듬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몇 번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해외 영화 리뷰 매체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의 집계 기준으로도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연기와 시각적 완성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반면, 서사의 일관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평이 많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제 경험상 이건 뤽 베송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고딕 호러가 아니라 고딕 로맨스를 만들려 했던 감독이니까요.
결론
《드라큘라: 러브 테일》을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오래 기억하는 것만이 사랑일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드라큘라를 완전한 악당으로도, 완전한 순애보의 주인공으로도 만들지 않습니다. 그 애매함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가면 장르적 만족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괴물이 된 남자의 비극으로 바라본다면, 드라큘라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다른 온도로 마주하게 됩니다. 극장에서 봤을 때 시각적 완성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만큼, 기회가 된다면 큰 화면으로 보시길 권합니다.